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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담기

혹시 당신은 교사 사이에 섬은 아니십니까?

제목 혹시 당신은 교사 사이에 섬은 아니십니까?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시는 2행으로 된 () 이지만.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육적 의미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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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도 수많은 섬들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교사 각자가 하나의 섬인지도 모르겠다.

섬은 단절되어 있어 외롭다.

외로움은 자유로움이란 선물을 준다. 그것은 미덕이다.

그러나 단절은 수많은 문제를 낳는다.  

 

운전면허증과 교사자격증

  

  운전면허증을 땄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운전을 능숙하게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운전면허증은 국가로부터 운전을 허락 받았다는 것, 그래서 운전을 하는 행위가 이제는 위법이 아닌 합법적인 일이 되었다는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교사자격증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양성기관에서 일정한 학점을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받았다고 해서 가르치는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전면허증이 운전을 허가하는 의미가 강하듯, 교사자격증 역시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에 불과하다. 능숙한 교사가 되려면 많은 경력에, 또 다른 요소들이 덧붙여져야 한다.

 

  운전을 능숙하게 하려면 운전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뛰어넘어야 한다. 실제 도로에서의 실천적-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운전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사기만 하면 누구나 이내 운전 능력이 원숙해진다. 운전은 단순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한 달만 운전하면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르고, 일 년간만 타고 다니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학생 교육을 능숙하게 하려면 교사양성기관에서 배운 내용을 뛰어 넘어야 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실천적-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운전 행위와 유사하다. 그러나 원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교사자격증을 따고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발령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이내 원숙해지는가?

   ▶▶▶ 아니다.

가르치는 행위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한 달만 가르치면 그전과는 확연히 다르고, 일 년간만 가르치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던가?

   ▶▶▶ 절대 아니다 .

 

왜 동료와 얼굴을 맞대야 하는가?

 

   자동차 운전은 기계를 조작하는 행위다.

혼자서도 반복하기만 하면 숙달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초보 운전자 시절에 같은 초보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왼쪽 백미러에만 의존했다가는 사각지대에 있는 차가 보이지 않아 접촉사고 나기 십상이라는 둥, 달려줘야 할 때는 확 치고 나가야지 머뭇거리다 보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초보 운전자 간의 의미 있는 소통이었고 효율적 연수였다. 비록 비의도적, 무계획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초보 교사 시절 이후, 우리는 가르치는 일에 대해 동료들과 얼마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이나 자유학년제 계획 등 일반 업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가끔 나누고 연수모임도 갖는다.

 

그런데 정작 교사의 본질적 업무인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듯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상식이 되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창의적 교수학습방법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 기를 나누고 있는가?

 

  자동차 운전은 기계조작 행위이므로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조작하면 언제나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행위는 그렇지 않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가르쳐도 반응이나 결과는 매번 다르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운전이라는 단순 작업을 위해서도 우리는 면허 취득 후 심화 연수를 자연스럽게 해왔다. 그런데 인간을 다루는 고차원적 교수 행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자발적 연수를 계속해 왔는가?

 

  사유와 성찰이 없는 반복은 오류를 습관화 한다. 이는 관습이 되고 타성으로 굳어져 버린다.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자각을 마비시키고 오류를 고착화 한다. 거기까지도 안타까운 일이다. 더 나아가 오류를 합리화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학교 현장에서 적잖게 목도하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해 온 관행을 가지고 문제 삼는 사람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사가 교실수업을 통해, 또는 학급운영을 통해 얻는 실천적, 경험적 지식은 소중하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경험들이 교사 개개인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동료 교사와 소통하지 않을 때, 자신의 경험은 검증과 확산의 기회를 잃는다.

땀 흘리며 익힌 교육적 실천 경험들이 동료 교사들과의 논의를 통해 검증되고 객관화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은 정교화 되어 이론적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교수 학습 방법이 발굴될 수도 있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한 실천적 임상 사례가 정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교육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편의적 선택이었음이 드러나 폐기되기도 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모두 교사의 전문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 틀림없다.

 

  흔히들 말한다. 폐쇄적인 교직 문화로 인해 교사 상호간의 협력과 소통이 부족하다고들 지적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한가? 교사가 매일 겪는 교육적 경험과 실패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교과협의회는 대부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 협의체를 운영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관심과 열정을 가진 선생님도 많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소중한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해질 기회를 잃고 만다.

 

  그렇다고 우리 선생님들이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업과 학급운영에 대해 고민이 없는가? 그것은 아니잖은가. 최근 들어 교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수업과 학생 생활교육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문제는 존재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조언하고 함께 고민할 조직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런 풍토 역시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다 .

 

  우리 선생님들이 스스로 모여서 함께 진단하고 비판하고 재구성하지 못할 때 교사는 섬처럼 외로이 떠 있게 된다. 서로 기대지 못해 쓰러지고 만다. 운전이라는 단순작업을 위해서도 우리는 서로 소통하지 않았는가...

<글 참조> : 묵호여중 수석교사 김동훈